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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0/2012

양경숙-SNS에서 정치꾼들의 문제점




한화갑의 보좌관 출신으로 라디오21 본부장을 역임했고 과거 친노였던 양경숙이 비례 공천헌금 사기혐의로 구속이 되면서 언론과 포털에서 커다란 정치이슈로 떠 오르고 있습니다. 

대선을 불과 몇 개월 앞둔 중요한 이 싯점에, 조중동과 정치검찰등 하이에나들에게 이런 좋은 먹이감은 없습니다. 더군다나 정치검찰은 박지원의 파트너로, 조중동은 친노로 만들어 대선구도를 장악하려 합니다. 총선 전후, 소셜네트웍에서 그녀가 이해찬, 박지원으로 대표되는 민통 지도부를 향해 꾸준히 마타도어를 일삼고 친노주의자들을 경멸했던 인물이었다는 사실은 구글 검색만 해도 쉽게 파악됩니다. 그럼에도 검찰과 수구언론이 양경숙 사건을 확대시키는 의도는 새누리당 전 현직의원의 공천비리를 묻어 주고 박근혜의 대선구도를 더욱 더 탄탄하게 만드려는 의도겠죠. 


왜 이런 문제가 계속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것일까요? 

소셜네트웍에서 몇해 동안 그녀의 언행을 지켜 보면서 정말 정치꾼들의 어두운 면을 그대로 보여주는평가할 가지가 전혀 없는, 황당한 맨션이나 궤변에 반론, 이의을 제기하면 검증되지 않은 수구 찌라시 기사 변명이나 듣다가 결국 블락을 당했던 씁쓸한 기억이 있습니다. 어떻게든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고 이기고 보자라는 습성을 지닌 이런 정치꾼들은 스트레오 타입의 귀를 가져 자신의 논리에 반하거나 동의하지 않으면 상대방을 적으로 만들고 조직을 동원해서 묻어 버리려고 합니다. 

이 모든 문제는 사회가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도덕적 가치와 합리적 기준이 없기 때문에 비롯되는 한국사회의 특징입니다. 의심 많은 사회는 자신을 속이니 상대방을 믿지 못하는 것이죠. 자신이 그러니 상대방도 그럴 것이다 라는 사고로 접근합니다. 근본적으로 뭔가 뒤틀려 버린 사회가 아닐지

작년 이즈음에 통진당 사하지역 조직(당시 참여당)의 일부 당원들과 추종자들은 자신들끼리 뒷담화로 의혹을 만들고 재생산, 각색하여 무차별적 인격살인과 협박을 당했던 경험을 예로들면 심지어 이의를 제기하는 자들에게는 참여당원이 아니니 편 들어주지 말라는 협박까지 일삼고, 추종자들까지 진실을 보는 객관적 시선이 없이 논리에 반하면 무조건 적으로 만들어 공격합니다. 

사회에 네편과 내편만 존재한다는 것이죠. 즉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싶고, 믿고 싶은 것만 믿고 싶은 인간들만 존재하는 사회, 그래서 사실이 드러나도 절대 사과하지 않는 점은 수구와 다르지 않아 입만 살아있는 '자칭 진보' 혹은 '입 진보'라 부릅니다. 이 점은 진보 보수 마찬가지입니다. 

총선 이전 야권연대 당시, 이미 온라인에서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던 통진의 구당권파 문제점을 간과하고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는 정신으로 통진의 대다수 지지자들은 파트(Power Twitterer)라 일컫는 정치꾼의 지시에 따라 민통을 수구와 엮어 마타도어 했습니다그러다 관악을 사태가 터지고 구당권파의 문제점을 기성언론이 다루면서 문제가 확산되자 파트들은 숨어 버리고 통진을 지지했던 많은 이들이 멘붕을 일으켰던 기억이 있습니다. 더군다나 소셜네트웍에서 파트들은 자신의 본 모습을 숨기고 있기 때문에 책임의식도 없고 사태를 근본적으로 파악하고 해결하는 역량도 부족합니다. 

수구진영이 신분과 스펙을 허위로 꾸며 신분상승을 꿈 꾼다면 원래 그러려니 하지만 진보 혹은 민주진영에서 이러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닙니다. 같은 진영이라도 동의하지 않거나 반론을 제기하면 신분을 하락시켜 노숙자로 만들고 자신은 화려하게 치장하는 작태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습니다. 그래서 양경숙의 학력, 경력 문제도 조직에서 인정 받을 수 있는 허위학력과 경력이 필요했다는 것이죠. 쓸데없이 강남좌파, 아메리카노 소모전이나 벌이고, 말로는 공정한 사회를 꿈 꾼다면서 조직에 인정받기 위해 학력과 경력을 속이는 이율배반적인 사회로 변질되고 있다는 겁니다. 

이런자들이 정치판에서 기웃 거리니 기본적인 윤리도 없이 이익을 위해서는 적이라도 뭉치고 더 큰 조직을 만들어 정치판을 더럽게 만들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양경숙이란 괴물이 만들어졌던 것이고 제2, 제3의 양경숙은 계속해서 나오리라 판단합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소셜네트웍에서 침묵을 지키면서 동의 하지 않는 대중이 많아진다는 사실이 희망적일 수도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되어 일어 나는지 깊이 고민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왜 온라인에서조차 자유롭게 발언 하지 못하고 이 정치꾼들 조직의 논리에 이끌려 편파적인 언행을 일삼는지 당신부터 반성들 좀 하시고, 제발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눈을 가져야 당신을 노예처럼 부려먹는 정치꾼들의 논리에 속지 않고 깨어있는 시민이 되는 겁니다. 

정신들 좀 차리시길!!! 
Wake up! 

아래는 올해 1월에 맨션을 주고 받았는 캡쳐로, 양경숙은 이미 총선 이전부터 박지원에게 마타도어를 했습니다. 그래서 검찰과 조중동의 박지원수사에 동의할 수가 없는 것이죠.



8/27/2012

Quotes About Lying-거짓말에 대한 명언



이제 종을 울릴 시간만 남았습니다.
제출 자료를 읽어보니 숨 쉬는 것도 거짓말로 쉴 사람들이더군요. 놀랍습니다!

참조: Quotes About Lying

무지함을 두려워 말라, 거짓 지식을 두려워하라. -파스칼 

불평과 거짓말은 나 자신을 약하게 하는 방법이다. 
강한 사람은 불평을 입에 올리지 않는다
. 
구멍난 자기 집 앞을 불평과 거짓말로 메우지 말고 진실로 메워나가야 한다. -체스터필드 


사람은 자신에 대한 거짓말을 할 때 가장 큰 소리를 내게 된다. -에릭 호퍼 

사람이 정직하게 말하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신이 거짓말을 금지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니체 


삶에서 만나는 모든 사기는 실제로 실행된 거짓말, 
즉 말로부터 행동으로 변형된 허위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 -사우스 


새는 궁(
)하면 아무 것이나 쪼아먹게 되며, 
짐승은 궁하면 사람을 해치게 되며
, 
사람이 궁하면 거짓말을 하게 된다. -공자(
孔子) 선악을 생각지 않고 상대방의 기분에 따라서
할 말을 골라 하는 것을 아첨이라고 한다. -장자(
莊子) 속아도 좋다. 속이는 사람은 되지 마라. 
숨기고 만지지 않고 있는 것은 사람에게 속는 동기가 된다
. 
교만하고 자랑하는 것은 사람에게 아첨의 온상이 된다. -유기(
劉基) 아무리 작은 거짓말이라도 가만히 내버려두면 
지옥의 불길처럼 사나운 기세로 커진다. -그라시안 

아부에도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 
아첨하는 자에겐 악어에게 먹이 주는 이와 같다. 결국에는 이에 먹히고 만다. -처칠 


악의 없는 거짓말이 좋다고 인정하는 사람은 그늘이 점점 더 어두워지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앵무새는 말을 할 수 있으나 새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 
원숭이도 말을 할 수 있지만 짐승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예기(
禮記) 어떤 것은 사기나 강압에 의해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으므로, 
절대로 그들의 선물을 받아들이지도 말고 허풍을 믿지도 말라. -베르길리우스 


어떤 나쁜 일도 거짓말에서 시작되지 않은 것은 없다. -존 드라이든 

언제나 바르게 행동하라! 특히 아이들을 대하는 데 있어서 바르게 하라! 
아이들과 약속한 것은 꼭 지켜라!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아이들에게 거짓을 가르치는 것이다. -탈무드 

옳은 것을 옳다고 하는 것은 아부에 가깝다. 
그른 것을 그르다고 하는 것은 비난에 가깝다
. 
완벽하게 거짓을 꾸며낼 수는 있지만, 끝까지 그것을 관철시킬 수는 없다
. 
거짓말은 무게가 없기 때문에 달아보면 꼼짝없이 들통나게 되어있다. -이드리스 샤흐



8/26/2012

피에타-김기덕감독




세계영화계가 인정하는 감독, 제도권의 이단아, 비정통파 고졸출신 감독, 홍상수처럼 단기간에 영화를 제작하는 감독, 영화계의 노무현, 현재 한국 영화 메이저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 감독 김기덕을 통칭하는 표현입니다.


그가 이번에 만든 영화 ‘피에타’를 계기로 모 언론의 토크쇼 출연이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그를 견제하고 낮추려는 제도권의 보이지 않는 간섭, 진실보다는 가십을 좋아하는 대중에게 자신의 철학과 가치관 그리고 왜곡되었던 자신의 진실된 모습을 대중에게 어느 정도 보여주었다고 판단합니다.

조감독의 배신파문 이후 가슴속 응어리를 토해냈던 영화 아리랑으로  칸느에서 '주목할만한 시선'을 수상했지만 그를 인정하지 않는 주류계와 메이저언론이 회피하므로서 김기덕의 철학과 가치관이 대중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었죠. 하지만 피에타를 계기로 언론과 나눈 소통은 김기덕을 이해시키는데 소중했고, 사회적도덕적 책임감을 거미줄과 나비효과로 대중을 쉽게 이해시켜 주었습니다. 

그 동안 영화계의 주류와 비평가 그룹, 주류언론의 편파적인 평가는 영화계의 잘못된 시스템을 바로잡으려는 노력보다 왜곡된 모습을 대중에게 보여주었다는 것이죠이 점은 영화계뿐만 아니라  한국 정치사회의 기득권이 약자에게 벌이는 작태입니다. 그럼에도 대중은 능력보다 스펙을, 객관적보다는 주관적인 자세, 권력을 중시하는 자세로 영화계의 마이너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습니다. 사회의 잘못된 근본원인을 파악해서 처방하기 보다는 주관적인 평가를 하고 선정적인 가쉽에 흥미를 가져 왔다는 것이죠.  

영화가 완성되면 제작자나 감독은 홍보 마케팅에 막대한 투자를 해서 성공하려고 합니다만 김기덕은 충분치 못한 자금으로 자신만의 영화를 만들어 시장에 내 놓습니다. 국내에서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해외에서 인정받고 벌어 들이면 된다는 그의 가치관이 때로는 한국의 기득권에게 미움을 받았던 것이라 생각합니다쉽게 표현하면 제대로 공부도 못한 주제에 까불고 있네 라고 이단아 취급했던 것이죠.  

하지만 김기덕은 자신만의 영화를 만들면서 지금까지 버티어 왔고 이 점을 이창동 감독이 너는 내가 하지 못하는 일을 하자나”로 대신 존경의 표시를 했다고 판단합니다.

그가 영화 '피에타'를 계기로 언론과 대화를 시도했다고 해서 타협을 하고 시대의 흐름에 순응하리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습니다. 인맥으로 뭉쳐진 한국사회의 모순 덩어리 즉, 영화계의 주류에 영원히 포함되지 못한다는 점을 그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겠죠. 타협과 순응은 자존심을 버리고 물질적인 안위를 얻는 것입니다. 기득권과 타협하지 않는 이런 점 때문에 영화계의 노무현이라 불려지는 것이겠지만 그는 영화감독으로 충분히 존경 받아야 합니다. 

보수정부가 들어서면서 칸느 각본상을 수상했던 이창동의 영화 ‘시’에 대해 한국 모 영화제 심사위원들은 정치적 잣대로 0점 처리를 해 세계영화계로부터 빈축과 비판을 받았습니다. 기득권은 기득권끼리 뭉치기 때문에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메이저 언론은 제도권의 문제점을 비판하지도, 다뤄주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언론이 중요하고 바로서지 않으면 진실이 대중에게 올바로 전달이 안되기 때문에 편집권의 독립이 보장되는 개혁이 필요한 것이죠. 그렇다고 도덕적 가치와 합리적 기준이 없이 개혁이 일루어진다면 역사는 반복만 될뿐 성공하지 못합니다.

공정한 사회는 말로만 이루어지는게 아닙니다. 당신 스스로 변하고 깨어날 때 세상도 변하는 것이죠. 

주위의 시선을 의식치 않고 사회에 꾸준히 메시지를 던져주고, 자신만의 색깔을 만들어 온 여정만으로도 충분히 존경 받아야 할 영화감독입니다. 김기덕의 영화는 한번보고 이해하기 힘듭니다. 때로 그의 영화가 불편하더라도 시간 나실 때마다 검색해서 한 편씩 보시도록 바랍니다

이번에 김기덕의 영화 피에타가 꼭 성공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대박 나시길! 




8/20/2012

유시민의 아메리카노-홍상수영화에 의미를 두기



2년 전 홍상수 감독이 ‘옥희의 영화’로 뉴욕영화제를 찾았을 때, 관객들에게 자신의 영화에 대해 너무 많은 해석과 의미를 두지 말라고 하더군요. 우리가 살아가며 부딪히는 소소한 일들에 대해 의미를 두지 않듯, 이해되지 않는 그대로,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라고 했습니다.

영화 마지막, 송교수가 다음학기 강의를 그만 둔 것이 자의에 의한 것인지 타의에 의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낙지를 토하고 난 뒤 자신을 합리화 시키는 대사에 대해, 이해 못한 미국인 관객의 질문에(저 또한) 홍상수는 아무 의미가 없다고 했습니다. 아마도 미국인 관객의 눈에는 생낙지를 먹는 것과 토한 낙지의 꿈틀거림이 신기해서 물어봤을지도 모르지만 저는 토해내서 꿈틀거리는 낙지가 전체 스토리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지 해석하는 차이가 그 미국인과 저의 차이점이 아닐지, 즉 보고 느끼고 토해내는 시선의 차이, 받아 들이는 차이점이 인간마다 같지는 않을테고 분명 존재하겠죠. 

 


홍상수의 영화는 몇 개의 스토리가 연결되어 만나게되며 우리는 어떤 의미나 복선이 깔려있을 것이라 찾아내어 의미를 부여하지만 홍상수에게는 그런 의미 조차도 불필요하다는 설명입니다. 이미 단편으로 나왔던 '첩첩산중'에서 교수와 여제자 그리고 남제자의 모습을 봐 왔기 때문에, 이 영화도 홍상수의 영화에 나오는 대부분 가질 수 없는 남자(유부남)를 더 사랑하고 애증하는 여자가 있고 그저 잠만 자고 싶은 남자와 그 여자를 가지고 싶은 남자의 삼각관계가 존재 합니다. 송교수와 옥희 그리고 진구가 그렇습니다.

그래서 홍상수를 어떻게 특징 짓느냐 혹은 어떤 감독으로 분류를 하기 보다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들을 있는 그대로 봐야 함에도 너무 깊게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해서 고민하다보면 해괴한 논리가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이죠. 너의 틀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자유롭게 사고하라는 의미가 맞지는 않을지?

제가 홍상수를 끄집어 낸 것은 요즘 유시민의 아메리카노 커피 논쟁이 소셜네트웍에서 뜨겁기 때문입니다. 그의 말대로 우리 주변에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들, 대중이 아무렇지 않게 주문하고 마시는 아메리카노 커피에 부르조아급 의미를 부여한다는 가설이 재미있지 않습니까? 더 슬픈 건 이 쓸모없는 소모전이 자칭 진보라 불리는 이들에게서 시작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통진의 부정경선 행위의 비 도덕적 모습을 드러나게 한 유시민은 그들이 죽이고 싶은 존재일지도 모릅니다. 총선 전만 해도 함께 힘을 모아 진보를 통합하여 통진을 만들었을 때 대부분(일부는 이미 예측을 했었고) 이런 상황까지 오리라 예측은 하지 않았을 겁니다. 논쟁의 시작은 관악을 부정경선이 단초가 되었고 이정희의 실기로 시작된 게임이지만 당의 논란 기준을 도덕적 가치에 부여하지 않고 책임회피에만 급급하여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니 문제가 벌어지는 것이겠죠.

사실 자칭 진보라 일컫는 운동권 일부 좌파세력 언행을 보면, 스타벅스에서 커피한잔 마시는 모습을 자랑스럽게 소셜 네트웍에 사진을 올리고 서로 찬양해주면서 좋아라 합니다. 그리고 이들은 노동, 환경보존의 현장에서 미국의 패권주의를 타도합니다. 사실 임금과 환경의 문제는 보수 진보를 떠나 대중이 깊게 고민해야 될 문제이지만 자칭 진보는 운동의 현장에서 미제타도를 외치고 온라인에서는 스타벅스를 마시면서 행복해하는 언행불일치의 모습을 보입니다.

유시민의 아메리카노 논쟁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이 브루조아 의미를 부여한 건 단지 권력을 어떻게 해서든 탈취하겠다는 의미만 있을 뿐이죠. 어떻게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을 갖겠다는 사고, 아마도 아니라고 하겠지만 지난 사건을 되짚어 보면 부인할 수 없을 겁니다.  

예전에 대형 마트상권이 동네상권으로 진입할 때, 자칭 진보들에게 이런 얘길 해 준적이 있습니다. 미국은 지방 자치제의 민주주의가 발달한 국가라 타운 공청회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대형 마트가 타운에 함부로 진입할 수가 없죠. 그렇다면 한국사회도 이런 점에 대해 공부를 하고 고민을 하라 즉, 현실적으로 공청회 시간을 퇴근 후에 열리게 만들어 주민들의 의사를 묻고 투표를 해서 대형마트가 진입하지 못하게 고민해야 될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했는데 아직 이런 기본적인 고민은 하질 않고 오로지 중앙 행정부와 관계기관을 타도하는 모습만 보일 뿐입니다. 물론 소통을 중요시 여기지 않는 현정부도 큰 문제가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 방법에 대해 고민을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뉴욕에서는 아메리카노 커피가 한국 돈으로 천오백원에서 이천원사이에 소비자에게 팔립니다만 서울은 그렇지 못하죠. 즉 시설비가 들어갈 것이고, 막대한 렌트비가 존재를 하니 뉴욕가격으로는 팔 수가 없을 겁니다. 그리고 브랜드를 좋아하니 비싼 커피를 마셔야 멋 들어지지 않겠습니까? 즉 행복은 돈과 연결된다는 사고와 스펙이 좋아야 인정 받는다는 모순된 사회의 일그러진 모습이죠. 이 점이 뉴욕과 서울의 차이점입니다.

바로 이 차이점을 간과하고 아메리카노 커피를 브루조아급 고급커피로 만들어 현재 진보가 벌이고 있는 쓸모없는 논쟁의 모습입니다. 


커피는 이미 우리 일상의 자리에 자리잡고 있고 의미를 부여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마시면 되고 한 모금에 행복하면 되는 것이겠죠. 홍상수의 영화처럼 깊게 의미를 부여할 필요 없는 아메리카노 커피에 대해 해괴한 논리를 들이대는 작태는 한국사회가 G20국에 걸맞는 국가인지 물어보고 싶더군요. 

진보는 꾸준히 변화해야 하는 것이죠. 스스로 틀안에 가두고 새로히 룰을 만들어 규제하면 안 됩니다. 이건 뭐 사회가 도덕적 가치도 없고 합리적 기준도 없이 쓸모 없는 논쟁을 만들어 싸우는 모습을 보면 이번 대선에서 정권교체는 가능할지 한심할 뿐입니다. 자신의 비윤리적인 언행으로 수구들의 잘못을 다 묻어주고 탐욕에 물들은 거짓말쟁이들이 사회정의를 외치는 모습이 처절합니다. 

그저 아메리카노 한모금 마시면서 느끼는 행복감 그리고 여유에 대해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지 마세요. 

뱀빨:

어제 박근혜가 봉하마을을 찾았군요. 발상의 전환이라고 할까요? 과연 이 여자가 진심으로 노무현 대통령을 참배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참여정부 시절 수 없이 노통을 향해 인신공격을 감행했고 많은 어록을 탄생 시키기도 했었죠. 그 중에 하나가 '참 나쁜 대통령'이라는 말이었습니다. 

새누리당 대선 후보로 확정되면서 어쩔 수 없이 봉하를 갔을 수도 있지만 박근혜의 선거진영의 아이디어를 야권이 배우고 이런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할듯 합니다. 참여정부 말기 노통이 중임제를 들고 나왔을 때도 이 여자는 인신공격을 하기도 했습니다만 현재는 찬성론자로 바뀌었습니다. 물론 한국의 정치판, 정치인들은 거짓말을 먹고 사는 인간들이라 그럴 수도 있겠지만 지난 시절 노무현이 조중동과 한나라당의 쓰레기들한테 당했던 일들을 생각하면 한숨 밖에 안 나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진은 아메리카노 같은 쓰잘데 없는 소모전이나 일삼으니 한심하기 그지 없습니다. 제발 브레인 좀 업 그레이드를 해 주시길 바랄뿐 기대는 하지 않습니다.

PS: 글을 올리는 동안 미국 정보기관의 부정부패를 다루어 충격을 주었던 영화 'Enemy of the State'를 만들었던 토니 스캇이 자살했군요. 안타깝습니다. 부디 영면하시길. 


아메리카노 한잔 하면서 감동을 맛 보시길 :)


8/17/2012

사랑할때 이야기하는 것들-삶의 고단함




조그만 약국을 경영하는 성격 좋은 남자는 정신질환을 앓는 형을 찾아나서는 게 하루 일과입니다. 형 때문에 헤어졌던 여자가 찾아와 곧 결혼한다는 말에 화는 내지 않지만, 함께 자러 간 허름한 여관에서 스웨터가 브라의 훅에 걸려 옷을 못 벗고 허둥대는 애인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이 한심스러워 밖으로 나옵니다. 

아버지의 유산으로 물려받은 거액의 빛을 갚기 위해 정말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여자는 가족과 기분 좋게 놀러 간 노래방에서 결혼하겠다는 동생의 말에 화를 냅니다. 매달 날라오는 빛 독촉에 자신은 힘겹게 살아가는데 도와주지는 못하고 만세 부르고 임신 핑계로 시집가겠다는 동생이 무책임하다며 애를 지우라고 합니다.

정신질환을 앓는 형을 가진 약사 인구(한석규)와 아버지가 남겨준 빛을 물려받은 패션 디자이너 혜란(김지수), 이 세상을 살아가기에 이 둘의 삶은 너무 고단합니다. 자신이 짊어진 삶의 무게만큼 사랑할 시간조차 버거운 이들을 그린 변승욱 감독의 영화 ‘사랑할 때 이야기하는 것들’의 이야기입니다.

동생 때문에 화가 난 혜란이 강한 수면제를 사기 위해 약국을 찾았지만 인구는 처방전 없으면 안 된다고 거절하고 운동이나 하던가 맥주를 마시라고 권유합니다. 그래서 함께 맥주를 마시게 되고 서로 마음속의 이야기를 털어 내면서 이 둘은 친해집니다. 좀 전에 인구가 애인을 뒤로하고 나왔던 여관으로 혜란과 함께 들어갑니다. 하지만 섹스 후, 눈을 떴을 때의 현실은 서로를 품어주고 사랑을 하기에는 이들의 삶의 무게가 너무 고단합니다.

혜란은 디자이너라지만 원칙대로 살기에는 빛을 갚을 수 없기 때문에 홍콩까지 날아가 명품브랜드를 보고 동대문시장에서 짝퉁을 만들어 팔다 경찰서에 끌려가는 것도 일상이고 신고한 여자의 머리채를 쥐어 잡고 패야 속이 풀리는 억척스런 여자입니다.

이들은 세상의 고단함에 혼기를 놓친, 그래서 사랑은 생각도 못했지만 어느 순간 서로의 마음속에 사랑이 자리잡아, 주고 싶지만 선뜻 받는 것이 부담스럽고 또 사랑하고 싶지만 그러기엔 현재 살아가는 모습이 피곤한 삶의 연속입니다.

혜란에겐 빛을 청산할 돈이 있어야 되고, 인구에게는 정신질환을 앓는 형이 있습니다.

인구와 혜란은 함께 잠을 잤어도 만나면서 키스하고 애정을 표현하기에는 순수하고 서툽니다. 까칠하고 무례해 보이는 것이 강한 것이라 생각하는 혜란이 자신만의 표현방식으로 인구에게 다가서려 하지만 인구 또한 애정을 표현할지 모릅니다. 그러면서도 혜란은 자신의 피곤한 삶을 인구에게 이야기 해 주지 않습니다.

왜 경찰서에 끌려갔고, 왜 옛 애인과 비 오는 골목길에서 싸웠고, 왜 차에서 내려 달라고 화를 냈는지 변명하지 않습니다.

함께 여행을 간 새벽 낚시터에서 인구가 휘파람 불며 들려주던 ‘즐거운 나의 집’을 혜란이 다니던 초등학교에서 매일 다섯 시에 들려주던 추억을 얘기해 주고 확인하기 위해 학교로 향하지만 결혼 허락을 받겠다는 동생의 애인 전화로 잠시의 행복은 깨져버립니다. 마치 꿈에서 깨어나듯 사랑은 내게 현실이 아니다라고 믿으며 차에서 내려달라고 인구에게 화를 냅니다.

그리고 그날 혜란은 약국에 찾아와 그 동안의 무례했던 행동에 대해 자신의 피곤한 삶을 이야기 해 주면서 서로의 인연은 여기까지라고 합니다.

부친의 제삿날 발작을 일으킨 인섭(이한위)을 찾아 나섰던 어머니(정혜선)가 교통사고로 죽으면서 장례식장을 찾은 혜란은 인구에게 위로해 주고 싶지만 내색도 하지 않고 밖에 나와 벤치위에서 흐느낍니다. 사랑하는 이 앞에서 강해 보이려고 노력하지만 사랑의 열병은 어쩔 수 없습니다.

어머니의 장례가 끝난 후, 인구는 혜란을 찾아가서 자신에게도 사랑했던 여자가 있었지만 형 때문에 여자 집안의 반대로 헤어졌다는 얘기를 해 줍니다. 형이란 존재는 살아오면서 항상 큰 부담이어서 자신의 삶에서 제발 사라져 버렸음 했다고 얘기합니다.

이 둘은 그렇게 헤어집니다.

인구는 어머니가 소중하게 간직했던 유품을 정리하다 젊은 시절 부모가 주고 받은 편지와 녹음 테이프, 형의 사진을 보면서 자책감을 느끼고 형을 정신병원에서 데리고 나와 어머니의 사랑, 빈자리를 대신하기로 마음 먹고 형이 좋아하는 등산을 함께 갑니다.

혜란 또한 자신의 삶이 고단하다고 동생까지 얽매어 놓지 않으려 행복한 마음으로 결혼 시킵니다. 삶이 피곤하다고 행복이 없는 것도 아니고 사랑이 없는 것도 아니란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겠죠.

어느 날 혜란은 인구가 보낸 편지 안에 인섭과 함께 찍은 등반사진을 받고 행복해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다니던 초등학교로 달려가 다섯 시에 흘러 나오던 노래 ‘즐거운 우리 집’을 인구의 전화메시지에 녹음시킵니다.

이 영화는 볼 때마다 늘 새롭게 다가오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예전에 한석규와 심은하가 출연했던 ‘8월의 크리스마스’같은 아련한 사랑 이야기지만 이 영화는 아프면서도 슬프지 않고 희망을 주는, 그래서 김지수가 출연했던 작품들이 사랑의 상처를 이야기해도 쓸쓸하지만 결국은 둘이 이어지고 사랑이 이어질 거라는 희망을 줍니다.

대부분 서로에 이끌려 첫사랑의 열병을 앓고 현실을 깨달았을 때 그만치 뜨거웠던 사랑은 지나갑니다. 그리고 상대방의 능력을 보고 어떤 사회의 책임의식을 가지고 재단했을 때의 사랑은 첫사랑만치 열정적이지 못해서 지워져 버리는지도 모릅니다.

물론 우리 주위에도 삶의 고단함으로 사랑을 극복하지 못하고 포기하거나 이루어지지 못하리라 생각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이성 문제를 떠나 가족의 생계문제로 자고 일어나면 아이를 버리는 사람들, 아이를 죽여버리는 사람들, 삶의 고단함 때문에 함께 생을 포기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비록 사랑이란 것이 아픔 없이는 기억되지 않겠지만 쉽게 잊혀지는 것도 아닙니다. 지나쳐버린 시간 속에서 부족하더라도 나눌 수 있다면 행복한 것이겠죠. 사랑을 표현하지 못해서 헤어진다면 그만큼 아쉬운 사랑이 어디 있을까요? 사랑하면서도 표현을 하지 못해 거스름 돈을 쥐고 나와 울면서 걷는다든지, 장례식장 밖 벤치 위에서 통곡하는 장면은 슬펐습니다.

사실 변명이란 것이 자주하면 이유가 되고 비겁한 사람이 되기 때문에 표현을 적극적으로 못 하는 사람도 있겠죠. 표현하지 못했던 혜란과 인구의 사랑이 아름다워 보였던 것은 가식적이지 않았기 때문일 겁니다. 사랑은 가식적이거나 이율배반적이면 안 되겠죠.

PS: 2007년, 2010년에 두번 포스팅했던 글을 부분 수정해서 다시 올렸습니다. 시간 나실 때 꺼내 보시도록.



8/15/2012

가을로-상실의 계절




정, 관계 로비수사를 끝까지 파헤치려 하지만 상부의 정치적인 논리와 압력으로 수사가 마무리되면서 여론은 급속히 악화가 되고 대검 중수부가 다시 수사를 맡게 됩니다. 끝까지 파헤치려던 담당검사는 억울하게도 여론마무리용 징계 휴가를 받는 와중에 10년 전 죽은 애인의 부친으로부터 피 묻은 여행수첩을 건네 받습니다.

참혹한 건물붕괴더미에서 며칠간 갇혀 지냈던 여자는 구사일생으로 구출이 되었지만 10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상처가 아물지 않아 조그만 소음에도 고통스러워하고 항상 불을 켜고 잠을 듭니다. 인터뷰 보던 날도 도어 여닫는 소음에 인터뷰를 포기하고 밖으로 뛰쳐나옵니다.

김영삼정부시절 발생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를 모티브로 ‘번지점프를 하다’의 김대승 감독이 사랑의 아픔, 상처, 상실 그리고 치유의 과정을 그린 영화 ‘가을로’의 이야기입니다.

초임검사 현우(유지태)는 밀린 업무 탓에 민주(김지수)와의 약속시간을 맞출 수가 없어 일이 끝나면 곧 가겠다고 먼저 백화점으로 보냈지만 건물의 붕괴로 민주가 죽으면서 자신이 죽였다는 자책감으로 지난 날을 잊기 위해 삶에 여유 없는 냉정한 검사로 변신합니다.

백화점 커피숍에서 일하던 세진(엄지원)이는 건물이 무너지면서 민주와 함께 건물더미에 갇히게 됩니다. 암흑 속 공포감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세진에게 민주의 여행 이야기는 마치 빗소리, 바람소리처럼 들려와 고통을 줄여주지만 건물더미에 하반신이 깔린 민주는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죽습니다. 하지만 세진이는 사랑하는 이에게 전해달라던 민주의 수첩을 현우가 상처를 받을까봐 민주의 집으로 보냅니다.

고통을 지워버리고 싶을 때마다 민주의 여행동선을 찾았던 세진이와 오랜만에 휴가로 민주가 신혼여행을 꿈 꾸며 적어 두었던 여행수첩의 동선을 찾아가는 현우는 몇 차례의 우연한 만남을 가지게 되면서 서로를 알게 되고 상처를 끄집어내어 고통을 함께 나눕니다. 현우는 세진이와 민주가 생사의 기로에서 보낸 며칠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을 원망하지 않고 사랑했었다는 말을 들으며 각자의 상처를 치유합니다.

이 영화를 이야기 하는 것은 한국사회가 사고가 터지면 예방을 철저히 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그때뿐이고 변하지 않습니다. 23년 전에 건축비리와 안전공사를 무시해 일어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로 많은 인명을 앗아 갔음에도 변하지 않습니다.

이틀 전, 경복궁 옆 현대미술관 신축공사장에서 발생한 화재의 원인도 안전공사를 무시하고 발생한 조급증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설계에 따라 엄격한 현장감독이 이루어져야 함에도 그렇지 못합니다.

물론 성과에만 급급한 이명박정부의 임기 내 완공원칙이라는 조급증 탓도 있겠지만 아무리 기술이 뛰어나도 설계에 의한 세부공정에 따르지 않고 힘으로 밀어 부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닌데, 후세를 위해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는 이런 점이 우리나라 정치, 사회를 망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됩니다. 무려 1990년대 중반에 벌어졌던 삼풍백화점의 건축비리공사, 정치검찰도 그대로입니다.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사회는 언젠가 망하게 되어 있는 것이 역사적 사실임에도 과거의 교훈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약자의 돈을 끌어 모아 도망간 놈이 큰소리 칩니다.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자가 사회정의를 외칩니다. 김재철의 사생활을 욕하면서 자신의 사생활은 개인적인 일이니 묻으려고 합니다. 자신은 비윤리적이면서 현정부의 도덕성을 탓합니다. 법을 지키지 않는 자가 법을 지키라고 합니다. 안철수의 말대로 사회가 마치 도가니의 축소판 같습니다.

도대체 사회가 제정신이 아닙니다. 전혀 부끄러워 하지 않습니다. 자연은 거스르지 않고 항상 그대로인데 인간은 그렇지 못합니다.

이제 8월 중순입니다. 곧 가을이 오겠죠?

누군가 가을은 상실의 계절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떠나 보낸 사랑이 생각나는 계절이기도 하겠죠. 누군가 에게는 상처가 사랑이 될 수도 있고, 추억이 아픔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이 영화 엔딩에서, 민주가 여행탐방 촬영을 함께하던 자신의 동료에게 이런 말을 해 줍니다.

새로 포장한 길인가 봐요.
전에 있었던 길들의 추억이 다 이 밑에 있을 텐데...
사람들은 이제 그 추억을 안고 이 새 길을 달리겠지요?
좋은 길이 됐으면 좋겠다.”

상처가 치유되야 사랑도 다시 할 수 있겠죠. 아물지 않은 상처를 가지고 사랑을 다시 한다면 또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을 겁니다.

김지수는 여자의 상처를 깊이 연기하는 훌륭한 배우이고 이윤기 감독이 만든 대부분의 영화에 목소리로 혹은 지나가는 씬으로 특별출연한 배우이기도 합니다.

어릴적 고모부에게 성폭행 당했던 한 여자의 아픔을 그린 이윤기감독의 영화 '여자 정혜'를 김지수와 함께 했고, 이후에 하정우 전도연과 영화 '멋진 하루'를 감독한 분이시죠. 딱히 그의 영화에 나오는 여자들이(한효주, 배종옥, 박진희를 포함해서) 하나같이 과거에 커다란 상처를 가졌지만 극복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서 희망의 메시지가 보인다는 것이죠.

자신이 섭외한 배우를 매 작품마다 출연시키는 감독으로 유명한 이윤기의 작품(너무 질릴 정도로)을 따라가다 보면 김지수가 보이고 그녀가 출연한 영화 세계를 따라가다 보면 여자의 상처, 사랑의 그늘 그리고 어렴풋이 보이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엔딩으로 남기는 내용입니다.

김지수가 한석규와 출연했던 변승욱 감독의 영화 '사랑할 때 이야기하는 것들' 도 그렇습니다. 그녀가 출연했던 대부분의 영화들이 해피앤딩으로 끝나지는 않지만 희망적으로 끝나리라는 예측을 아련하게 전해 줍니다.

이 영화도 그렇습니다.

현우와 세진이 각자 고통을 떨치려 떠난 여행에서 우연히 만나 10여년전의 상처와 고통을 치유하는 과정은 운명적이고, 필연적인 만남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여행에서 돌아와 마치 단잠에서 깨어난 듯 일상으로 돌아가서 즐겁게 일에 몰두한다든지, 현우가 자신의 부하직원(박철민)에게 이름만 알고있는 세진의 거주지를 알고 싶다고 할 때의 모습은 여행을 떠나기 전, 냉정했던 그래서 여유로워 보이지 않은 검사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또 그가 세진이 근무하는 커피숍으로 찾아가 다시 만날 때는 현실적으로 한국사회의 검사라는 직업자체가 별볼일 없는 스펙을 가진 세진이라는 여자와 러브라인이 형성되지 않는 냉정한 사회일수도 있겠지만 해피앤딩으로 읽고 싶은 것은 나만의 순수한 욕심 내지는 해석일까요? 

가을을 맞이하면서 긴 겨울이 오기 전에 사랑을 다시 추억하고 싶고, 느끼고 싶고, 읽고싶은 분이 있다면 한번쯤 다시 꺼내 보셔도 좋을 거 같습니다. 


8/02/2012

강금원회장님 부디 영면하시길...



그 남자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강금원.

저는 전라도 부안에서 태어났지만 젊어서부터 부산에서 사업을 시작했답니다. 그 당시엔 지방색이 대단했습니다. 말도 마세요. 그 편견과 냉대! 정치꾼들이 지방색을 부추겨 정치하던 그 시절, 망국적인 지방색이 절정에 달했던 바로 그때, 저는 아주 특별한 남자,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한 남자를 만났습니다.



이익을 좇아 부나비처럼 떠도는 정치판에서 당선이 확실한 정치 1번지인 서울 종로를 팽개치고 ‘전라도당’이라고 눈길도 주지 않는 부산에서 떨어지고 또 떨어져도 바위에 계란 던지듯
지역감정에 도전하는 ‘무모하고도 허술한 이상주의자’인 한 남자를 보았습니다.


부산에서 사업을 하며 ‘망국적인 지역감정을 깨야 나라가 살겠구나’ 생각했는데 그 무모한 남자와 무한한 정서적 동질감을 느꼈습니다. 저는 그 정치인을 키우고 싶어 제 발로 그를 찾아가 후원인을 자청했습니다. 당신을 돕고 싶다고.

제가 인재를 보는 눈은 있지요?

자신의 영달이 아닌 ‘사람들이 원하는 바를 채워주는 게 정치다’ 라고 말하는 그 정치인을 키우고 싶었습니다. 저는 그동안 모든 사업가가 그러하듯 이익창출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제법 탄탄한 사업체들을 일궜습니다. 지나고 보니 하늘이 제게 많은 물질을 주심이 ‘이때를 위함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 남자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고 강금원 회장이 노무현을 만났던 계기와 추억을 남긴 글입니다. 그리고 노통이 서거하자 교도소에서 잠시 나와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습니다.  

"당신의 뜨거웠던 삶을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힘든 고통도 나누려 했습니다." 

한국 정치판을 더럽게 만드는 정경유착, 부정부패를 잘 알고 있던 강금원이 노무현을 알게 되면서 그의 정치적 부담감을 다소나마 덜어주고자 노력했던 강금원 회장의 별세. 자신은 병으로 아파하면서 죽을 때까지 함께했던 그에게 할 말이 없습니다.

그가 추구하고자 했던 상식적인 세상, 공정한 세상을 어찌 글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슬픕니다. 부디 영면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