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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9/2012

모래시계-상식적인 세상은 올 수 있을지.


아버지가 빨치산이었다는 이유로 육사면접에서 떨어지자 어머니는 처음으로 아버지의 얘길 해주고 철로 위 자살로 이 세상을 포기합니다. 그리고 아들은 세상을 바꾸기 위해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는 생각으로 건달이 됩니다.

어릴 때, 아버지가 부당한 공권력으로 억울하게 유치장에 들어가고 조상대대로 물려받은 땅마저 골프장 건설이란 명분으로 기득권에게 갈취 당했던 아픔을 가진 친구는 빨치산이란 연좌제로 대학진학을 포기한 친구의 등록금으로 법대 진학을 합니다.

우연치 않게 운동권이 된 부잣집 여학생은 학내 시위 중 경찰서에 끌려가 형사에게 부르주아의 딸이라는 조롱을 듣습니다. 돈이 없는 학생이 운동하는 건 이해가 되는데 너희들은 수상스키나 골프를 즐길 것이지 이런 취미생활을 가지면 세상이 피곤해 진다는 잔소리를 듣습니다. 잔인한 고문을 받고 주동자를 실토할 수 밖에 없었지만 친구들은 그녀를 멀리합니다.

배려없이 강요를 일삼고 상대방의 상처를 감싸 안아주지 못하면서 오직 내편과 니편만 존재하는 세상이라... 

1995년 드라마로 만들어져 국민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던 ‘모래 시계’ 주인공들 이야기입니다. 무려 17년 전에 만들어졌지만 시대상황은 1970, 80년대의 이야기로 3, 40년 전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꿈 꾸었던 세상이 변한 건 없습니다. 태수, 혜린, 우석 이 세 사람이 꿈 꾸던 약자를 위한 세상이 오지 않았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 시대의 아픔이었던 군사독재자의 딸이 대통령을 꿈 꾸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모래시계 검사로 불려지던 홍준표를 싫어하던 이유도 그가 권력을 누리면서 탐욕의 화신으로 변해가는 괴물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였습니다. 지리산에서 혜린이 태수의 화장재를 뿌리면서 우석에게 묻습니다. 그를 없앤다고 세상이 변하리라 생각하느냐. 그 질문은 이 시대에 아직도 유효하고 세상이 변한 건 없습니다. 쉽게 얘기하면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는 홍준표가 세상이 바뀌면 손해 본다는 것을 깨닫은 괴물 정치인으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국격은 국민의 의식수준이라고 합니다. 세상이 변하지 못하는 건 권력자들의 탐욕도 문제지만 국민의 지적수준과 책임도 따라야 합니다.. 당신들이 이명박정부를 탄생 시켰듯, 잘못된 정부의 재탄생을 막기 위해선 올바로 바라볼 수 있는 객관적인 눈을 가져야 함에도 아직 신적인 대통령을 원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런 세상에선 누가 대통령이 되든 대중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을 수 없기 때문에 룰라 같은 인물을 만들어 내지 못합니다. 건국 이래, 시대의 아픔이라고 항상 변명 하면서 자신을 바꾸려 노력하지 않았다는 것이죠.

요즘 트위터에서는 정치인이나 파워트위터들의 비윤리적 문제 때문에 맨붕 온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그들을 지지하는자들이 자기합리화를 위한 궤변론자들도 많아졌습니다. 객관적인 시선보다는 오직 조직의 논리, 자기 편이라는 이유로 편파적 지지를 일삼다 보니 논리가 산으로 가고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겠지요. 사회가 기본적으로 요구하는 도덕적 기준과 합리적 판단을 내리면 간단한 것을 왜들 해괴한 논리와 궤변으로 세상을 어렵게 살아 가는지 보는 내내 안타깝고 절망스러웠습니다.

세상을 바꾸자면서, 깨어난 시민이 많아져야 한다면서 그리 못하는 것은 행동보다 말이 앞서는 것도 있지만 최소한의 양심이 무너지면 가정, 사회가 무너진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척보고 사기꾼인지 알았다는 잡놈년들이 비윤리적인 행태를 자기편이라는 이유로 옹호하고 그럴수도 있다는 잣대로 변명해 주는 사회는 분명 불행한 사회입니다.

작년, 유부남이 아님에도 한국의 한 여자와 만났다는 이유로 정당 조직과 뒷담화족들에게 마타도어를 당하고 깊은 상처를 받았던 적 있습니다. 심지어는 불법으로 신상까지 털리고, 불법으로 대동한 형사와 기자를 사칭한 정당의 모 지역구 온라인 담당자에게 봉하에 나타나면 죽임을 당한다는 협박까지 받았습니다.

물론 주범은 누구의 오른팔이라면서 부산 앞바다에 생매장 시킨다는 살해협박도 했습니다. 그리고 처음 고백하는 것이지만 이 주범은 술에 취해 쓰러진 저를 문제가 되었던 여자와 함께 두 번이나 모텔로 옮겨 함께 재우고 후에 마타도어에 이용해 먹습니다. 물론 돈 일원 한푼, 물 한 통 얻어 마신 적도 없고 금전관계 또한 전혀 없지만 사기꾼으로 매도해 묻었던 것이 작년 이즈음입니다.

이번에 파워트위터의 비윤리적 행태가 수면위로 떠오르면서 나의 깊은 상처를 다시 건드리는 일이 발생하더군요. 허위사실로 인격살인 했던 이 조직의 어느 누구도 사과는 커녕 반성조차 하지 않은채 아래와 같은 맨션을 저에게 보냈습니다. 문제는 이런 사람들의 이런 태도가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을 위태롭게 만든다는 것이죠. 여기서 형님이란 누구인지 알만한 분들은 다 알겁니다.

물론 트위터의 속성상 문제된 파트의 범법 사실이나 피해사실이 정확히 팩트로 드러난 것은 없습니다. 그도 억울한 사실이 있겠지만 그를 판단하는 잣대와 나를 판단했던 인격의 잣대가 바뀐 것은 분명합니다. 있지도 않은 사실로 저를 인격살인했던 패거리들이 그에게는 자기편이라는 이유로 그럴 수도 있다는 옹호를 하더군요. 세상이 참...
이런 논리라면 정당내에서 니탓 내탓하면서 싸울 이유가 없어지죠 서로 다른게 없는 조직이니.

당시 진실을 파헤칠 때 저에게 도움 주었던 분들도 옹호하는 측과 응징하는 측으로 갈러져 서로 서먹한 사이가 되어가고 있는 것 또한 현실입니다.

최초 이 사람의 일이 작년 12월인가 터졌을 때 저의 경험을 예로 들어 사건 당사자인 두 사람에게 분명 조언했고 해결이 되지 못하면 언젠가 수면위로 다시 떠 오를 것이라는 주의도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지지했던 이정희의 침몰, 이석기 김재연의 등장으로 일관되지 못한 언행과 분열에 분열을 거듭하면서 총선 전후 급격히 늘어난 그의 반대론자들에게 이번 사태는 사냥감으로 충분했습니다.

물론 이 사태를 순수한 의도로 해결하려는 분들도 있고 정치적 의도로 접근하는 분들이 있기 때문에 동력이 생긴 것이라는 개인적인 판단입니다만 솔직히 말씀 드리면 여기서 백날 떠들어봐야 소용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간단하게 법으로 응징해야죠. 하지만 뒷담화족들에게 이런 먹이감은 마냥 씹기 좋다는 겁니다.

사회정의? 상식? 그건 개나 소나 다 부르짖기 때문에 작년에 상처 받은 이후로 이 말을 가장 싫어 합니다. 제가 매장 당할 때도 범법자는 그렇게 행동했고 그를 지지하던 추종자들 또한 같은 언행으로 일관하면서 진실이 드러난 지금, 단 한번도 사과하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불합리한 기준과 판단 그리고 모순, 궤변 등을 보고 있노라면 분노가 치밉니다.
뭐 이런 사회가 있을까? 자기 편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조직이라는 이유로 윤리적 행태에 대해 판단하는 기준이 달라진다면 바뀐 세상이 올까요? 글쎄…

앞서 모래시계의 예를 드렸듯 3, 40여년전 세상을 바꾸겠다는 사람들이 지금은 기득권의 자리에서 당신을 노리듯, 어떡하면 당신들도 또 다른 약자의 뇌, 마음, 주머니를 털어 이 세상 팔자 고치고 살지 궁리만 하고 있을 거라 판단합니다. 또한 도덕적기준과 합리적 판단이 없는 사회라 언젠가 당신도 당하지 않으리란법은 없겠죠.

과거를 반성치 얺고 되돌아 보지 않기 때문에 역사는 반복되고, 세상을 바꾸자면서 약자를 괴롭히고, 기득세력을 탓하면서 같은 언행을 일삼는 당신이 부끄럽지 않으십니까? 3,40년 전에 꿈꾸던 세상이 아직도 왜! 변하지 않았는지 되돌아 봐야 할 것입니다.

당신이 바뀌지 않으면 세상은 바뀌지 않습니다. 깊이들 고민해 보시길 

6/14/2012

미드나잇 인 파리 Midnight in Paris-당신의 사랑은 안녕하십니까?



당신에겐 아름답고 소중한 행복이,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겐 거추장스럽고 불편하다면 어떻게 극복해 나가겠습니까?

더 많은 사랑으로 혹은 배려심, 인내심 아니면 헤어짐?


작년 이맘 때, 칸느 개막작으로 상영된 이후 뉴욕에서 상영되었고, 올해 오스카에서 각본상을 우디에게 안긴 영화 미드 나잇 인 파리 Midnight in Paris’가 이제서야 서울서 개봉한다는 사실도 놀랍습니다. 상업적으로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판단일지 모르지만 전혀 돈이 아깝지 않은 충분히 훌륭한 영화입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전 프랑스 대통령 사르코지의 부인 브루니가 미술관 큐레이터로 출연해서 말도 많았고 탈도 많았던던 영화이기도 합니다.


감독 우디 앨런은 인간의 일상적인 평범한 삶을 끄집어 내어 비틀고 쥐어짜면서 다시 한번 우리의 삶을 고민하게 만듭니다. 웃음 뒤에 남는 슬픔, 슬픔 뒤에 남는 웃음, 일상의 잔잔한 여운도 사실 지나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지만 인간이 살면서 고민 없이 해결할 일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나이가 들수록 미래를 두려워하는 존재라서 과거에 집착하게 되고, 보다 더 안정적인 생활을 가지려고 혹은 지키려고 하겠지만 현실이 최악이든 아니든, 누구나 한번쯤은 인생의 황금기를 가졌다고 추억할 겁니다.


내 시절에는 그때가 좋았는데 지금은 아냐. 지금 생각해도 그때가 정말 좋았어.”


물질이 삶의 풍족함을 가져올 수는 있지만 행복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미래를 보지 못하기 때문에 영원히 과거의 프레임에 머무르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 영화가 그렇습니다. 누구나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을 인생의 황금기를 따라 여행을 가는 환타지 이야기입니다.



결혼을 앞둔 소설가 그(길역 오웬 윌슨)는 약혼자 그녀(이네즈역 레이첼 맥아담스)와 파리로 여행을 오면서 예술의 도시에 푹 빠져버립니다. 비 내리는 파리의 거리를 사랑하는 사람과 우산도 없이 걷고 싶은 그에게 피앙새 그녀는 쇼핑과 노는 것이 더 즐겁습니다. 풍족한 삶을 살아 온 그녀에게 있어 인생에 가장 소중한 것은 경험임에도 전문적 지식을 가진 이와 미술관에서 전문적이고 남들과 다름을 느끼는 대화를 나누는 것이 더 좋은 여자이기도 합니다. 그녀가 결혼하고 싶은 남자는 그가 아니라 소설가, 아니 돈 많이 버는 할리우드 시나리오 작가의 지위일 것입니다.


사랑이란 기쁨과 슬픔을 서로 나누고 공유할 것이 많음에도 이들은 서로의 차이만 발견하지 공유하지 못합니다. 현실적인 여자에게 감성적인 남자란 철부지 아이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보수주의자 장인에겐 배려심 많은 그가 빨갱이 좀비처럼 보이기만 할 뿐 좋은 사윗감으로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가 탐탁치 않아 의심많은 장인은 자정이면 사라지는 사위에게 혹시 애인이라도 생긴 건 아닌가 해서 탐정까지 고용합니다.


장인의 파티에 초대되어 와인에 취한 날, 그녀는 친구와 함께 클럽 파티에 가버리고 홀로 호텔로 걷다가 길을 잊어버립니다. 어느 성당 앞에서 택시를 기다리다 자정 종소리와 함께 1920년대의 자동차가 도착하면서 과거의 판타지로 빨려 들어갑니다. 일생을 라이벌로 살았던 소설가 피츠 제럴드와 헤밍웨이, 미술가 피카소, 달리 등 1920년대 유명했던 인물을 만나게 되고 피카소의 연인이었던 에드리아나(마리옹 꼬띠아르)를 만나 뜻 깊은 경험과 사랑에 빠지기도 합니다.


이 영화는 우리가 가진 사랑이 어떤 것일까 현실의 틀에 갇혀 사는 것은 아닐지 깊은 고민을 시사하는 이야기입니다. 사랑은 서로 배려하고 소통하며 공유해야지 강요해선 안됩니다. 상대방을 불편하게 만든다면 사랑이 아닌 집착일수도 있습니다.


자식의 장래를 위해 위만 바라 보는 시대에 부모는 자식의 혼수장만을 위해 집을 처분하고 보장된 안정을 위해 더 낮은 곳으로 갑니다. 자식들은 물질을 취하며 사랑으로 착각하며 삽니다. 과연 이들이 사랑으로 살아가는 것일까요? 서로 이용해 먹고 탐욕하며 살아가는 도덕성 위기의 시대에 말입니다.


사랑하는 이와 비를 맞고 걷고 싶다면, 그 혹은 그녀에게 말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한번쯤 고민해 보시길.


당신의 삶을 혹은 사랑을 되돌아 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으로도 많은 메시지를 줍니다.



6/04/2012

임수경과 메카시즘 그리고 이해찬




이틀전, 임수경의원이 탈북자에게 한 발언이 모든 사안을 묻어버리고 있습니다. 권력이란 약자를 위해 사용되어야 함에도 억압하는 도구가 되어선 안 되는 것인데, 개념 상실한 탈북자의 언행이 잘못되었다 하더라도 신분을 내세운 임수경의 일부발언은 분명 비판 받아야 하겠죠. 하지만 그녀가 즉시 사과했음에도 수구와 조중동 등 발톱을 감추고 있던 하이에나들에게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리가 없습니다.


지난 통진당의 비도덕적인 관행인 경선 부정투표 사건으로 떠오른 치열한 종북 논쟁은 공동대표였던 이정희의 실기와 당권파로 분류되는 이석기 김재연의 사퇴불가 방침으로 메카시즘 논쟁으로까지 발전하여 현정부의 부정부패와 새누리당의 패륜적인 행태 등 모든 사안을 묻어 버리는 이때에 임수경의 발언은 수구연합에게 빌미를 제공하고 기름을 붓는 격이 되고 말았습니다.


통일소녀 임수경이 왜 수구들의 먹이감이 되어 어처구니없이 비판을 받는지 우선 파악부터 해야되겠죠.


노태우정권 시절, 이념으로 정권을 유지하고 있는 남북의 본질을 알고 싶어 1989년 위험을 무릎 쓰고 평양을 방문했고 참가후 판문점으로 귀국, 안기부에 의해 즉시 체포 당해 고문을 받고 투옥당했던 우리나라 민주화에 헌신했던 인물입니다. 물론 그녀가 노태우 군사독재정권의 허가를 받지 않고 북을 방문했던 사실이 현행법을 어겼기 때문에 옳은 일은 아니지만 당시 허가방침을 자신의 입맛대로 단칼에 바꾸었던 노태우 정부의 일관성 없는 태도와 정책 또한 분명 잘못된 일이고 비판받아야 마땅합니다.


서울 올림픽 이듬해 김일성은 정권유지, 이념유지가 필요했던 시기라 예산이 넉넉치 않음에도 김일성 주체사상을 심기위한 축제가 필요했고 그의 주도로 평양에서 열린 세계청년학생축전 참가를 희망하던 남한내 진보인사들의 북한방문을 노태우 정권이 당초의 허가방침을 바꾸자 전대협은 임수경을 참가 시켰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돌발적이고 자유 분망한 사고와 언행은 북의 기관원들과 청년들에게 남한의 모습을 다시 생각하게 하고 김일성 정권을 당황하게 만들었던 것은 귀순했던 탈북자들이 증언해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임수경으로 대표되던 민족의 소망이 이념장사하던 남북의 두 정권에게 귀찮은 존재나 마찬가지였던 것입니다. 그런 그녀가 이제는 민통의 비례의원으로 원내에 진출하여 한반도의 평화에 한 축을 담당하려 했던 싯점에 구설수가 터진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수구들이 치어놓은 그물에 걸려 든 것이죠. 백지연의 끝장토론에서 설전을 주고받던 탈북자 청년이 초대받지 않은 자리에, 더군다나 어떻게 장소를 알았는지 참석한 것만 봐도 임수경의 일거수일투족이 그들에게 먹이 감이 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녀가 수구들의 타켓이 되어 사찰 당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염려스럽습니다.


지난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10년 동안 김대중과 노무현 대통령은 북을 파트너로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려 무단히 애써왔고 두 번의 남북평화선언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명박정부가 들어서면서 한반도의 평화는 급속히 냉각되어 평화선언은 무효화 되어 버리고 일촉즉발의 사태로 이어지고 있는 것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 이익집단 이명박정부가 정권을 잡으므로 해서 북풍을 빌미로 5년 내내 선거 때 및 부정부패 스캔들이 터질 때마다 이념을 팔아 정부를 지탱하는, 어떻게 국민을 기만하고 정권을 유지하는지 우리는 직접 경험하고 있습니다.


현재 임수경 사태의 논란은 북을 어떤 상대로 보느냐의 좌우파의 시각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수구들이 기만하고 이용해 먹고 있는 이 사태를 야권의 제1당인 민통에 누가 대표가 되어야 해결할 수 있을까요? 적당히 수구와 타협하고 친화적인 인물이 필요할까요 아니면 소신껏 강공정책으로 밀고 나가야 할 인물이 필요할까요?


현재 민통 대표경선이 이해찬과 김한길의 두 축으로 선두다툼이 치열하게 벌어지고는 있지만 여론을 무시한 정동영, 천정배, 손학규, 김두관 등 민통의 반 이해찬 연합의 선택은 김한길을 향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지난 총선에서 좌클릭했던 의원들까지 반 이해찬 연대에 합세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리고 조중동등 수구연합은 이박담합으로 연일 비난하고 검찰 지원군은 허위사실과 정황사실만으로 친노를 비도덕적인 세력으로 만들어 지원하면서 민통내 반 이해찬연합의 의도대로 김한길로 향하고 있습니다. 애초에 그들이 문재인을 대선후보로 내세우기 위한 이박담합으로 마타도어했지만 반 이해찬 연대의 실체가 드러나므로해서 소설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죠.


조중동과 수구 이익집단이 가장 싫어하는 이해찬이 민통의 대표가 되길 기원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서울 경기의 민통대의원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는 아직 미지수이지만 그들이 현명한 선택을 하리라 마지막까지 기원해 봅니다만...


적당히 타협하는 세력이 필요하지 않은 시점인데 오늘 내리는 뉴욕의 비와 같이 현실은 암울하기만 합니다.